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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오퓰렌스] 세계에 나를 던지다 '이탈리아' - 프롤로그

by 오퓰렌스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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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퓰렌스 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풀어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이 주제로 수많은 글쓰기를 시도했고 기록하려 했으나 끝끝내 완성하지 못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작심삼일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괜스레 거창하게 무게를 잡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도전에 대한 이야기로,

 

또래보다 뭐든지 늦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버스를 혼자 탔던 아이가

 

어떻게 5년 뒤에는 7개국, 20개 도시를 두 발로 다녀온 여행자가 되었는지 그 첫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세계에 나를 던지다 '이탈리아' - 프롤로그

 

 

 

저란 사람은 청주 토박이로 나고 자라, 지금은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남자입니다.

 

FM께 감사하게도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왔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게 얼마나 어렵고 감사한 일 인지 알아가는 요즘입니다.)

 

딱 하나 특징이 있다면, '교육의 도시'라는 타이틀이 실감될 정도로 얼마나 많은 학교가 이 도시에 있었는지,

 

무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등굣길로 15분 넘게 걸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버스를 탈 일도 거의 없다 보니

 

처음으로 혼자 시내버스를 탔을 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때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홀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세상을 다 가진 듯 돌아다녔습니다.

 

진작에 이런 세상이 있었는데 좁은 우물 안에서만 있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었을 때는 무려 강원도로 스스로를 던져 보았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시내버스를 넘어 시외버스도 혼자 타게 되었고

 

지갑과 폰만 있으면 국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절대 '흰 천'과 '바람'만으로는 대한민국을 다닐 수 없습니다.)

 

서울은 거의 주말마다 들리다시피 했으며 강릉은 현지인 못지않은 가이드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한계와 역량을 넓힐수록 볼 수 있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이 참으로 벅차고 흥분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20살을 보내고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던 21살.

 

이번에는 생애 처음으로 가족과 자유여행을 갔습니다.

 

무려 '뉴욕'으로 말이죠.

 

비록 뉴욕, 워싱턴 두 도시만 찍고 돌아오는 10일짜리 여행이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얼마나 별천지인지, 동시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21살 청년의 가슴을 터질 듯이 뛰게 만드는 데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 가족에게 공표해 버렸습니다.

 

다음 비행기는 무조건 이탈리아로 가는 편을 타고 있을 거라고.

 

그것도 혼자서 말이죠.

 

 

 

(사진 속 장소는 청주 수암골로, 하단의 내용과 딱히 관계는 없습니다.)

이탈리아를 고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점은 여행을 넘어 해외 거주까지 생각했던 당시의 마음이 컸습니다.

 

그 중심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지니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박성진' 님을 롤모델로 삼은 이후였죠.

 

저와 비슷한 또래에 해외로 정착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제가 가진 '꿈'을 그대로 현실에 그려낸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꿈을 찾기 위한 여행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자유의 시간들을 잠시 접어두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현실에 힘이 부칠 때마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시에 휴대폰은 꿈도 못 꿨고 사지방도 짬 순서대로 유료로 사용하던 시절입니다.)

 

여가 시간에 할 일이 독서와 운동 외에 별 다른 선택지가 없던 분위기라

 

그림은 방해받지 않는 저만의 휴식시간이었고

 

꿈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구체화시켜주어 현실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한 가지 버킷리스트를 추가했습니다.

 

"전역하면 반드시 저 장소로 직접 가서 사진에 담아 오자."

 

 

 

군에서 220만 원, 전역 후 알바까지 보태어 총 350만 원의 여행경비를 모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무려 4개월 동안 저 일을 했었는지 모르지만

 

매 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여행까지 몇 주 남기지 않은 시점,

 

은행에서 첫 환전을 했고 지금도 100 단위를 호가하는 지폐의 두께감과

 

갓 환전한 빳빳한 유로의 촉감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7년 10월 18일.

 

드디어 역사적인 출국 당일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3년간 그토록 원해왔고 꿈꿔왔던 순간이었지만,

 

새벽 4시에 잠도 못 이루고 일어나서 어제 이미 내용물을 5번이나 전부 꺼냈다가 다시 싸며 체크한

 

배낭 두 개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두려움' 이었습니다.

 

 

 

전날에 부랄 친구랍시고 만난 녀석이 해준 조언으로

 

"혼자 가냐? 그러다 국제미아 되면 어쩔라고."

 

하고 툭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되었는지,

 

아니면 최근에 영화 '테이큰'을 너무 몰입해서 본 건 아니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성격에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도전을 내 걸었다니

 

오히려 미쳤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 배낭을 메고 가서 정말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과 뱃속을 뒤엎었고

 

아들이 꿈을 이루는 순간을 함께 하겠다고 눈 비비고 동행해주신 F M D.

 

친히 터미널까지 태워주시고 배웅해주셨는데

 

'저렇게 배웅해주는 가족의 모습마저도 마지막이 되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D, M과 한 컷 박았습니다. 당시 F께서는 주차를 하시는 동안 버스가 출발해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그게 많이 아쉬웠다고 하셨습니다.

 

당장이라도 내리고 싶은 마음에 주춤거릴 때, M께서 꼭 안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 네가 꿈을 이루는 순간은 우리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이기도 해.

 

누구나 가장 부러워 할 만한 순간을 경험하러 가는 거니 떨릴 순간도 아껴가며 모든 순간들을 담고 오너라!"

 

그 말씀 한마디를 듣고 다시 깊게 포옹한 후 드디어 버스에 첫 발을 올렸습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 건강하게 돌아와서 새 역사를 남기겠습니다.'

 

(???: 하이고 어디 파병가유?)

 

그렇게 장장 28일간 경험할 이탈리아의 일정 중 첫 초침이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오퓰렌스] 세계에 나를 던지다 '이탈리아' - '로마' 1편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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