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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오퓰렌스] 세계에 나를 던지다 '이탈리아' - 로마 2편

by 오퓰렌스 202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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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2편]




새벽에 화장실을 갔다가 처음 이 변기를 보고 사고가 정지했습니다.

'아, 오른쪽이 세면대인가? 그러기엔 너무 낮고 앉기엔 불편하게 생겼는데...'

이탈리아 여행을 오면 마주하는 딜레마 중 하나인 이 변기의 정체는 사실 '수동식 비데'입니다.

하지만 앞서 제가 처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용도를 몰라 족욕을 한다던지,

심지어 어떤 분은 손빨래까지 하셨다는 에피소드도 있어 웃픈 신고식을 겪곤 합니다.



첫 아침으로 맞이한 첫날의 시작입니다. 일찍이 아침 공기를 맡으며 테르미니 역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부지런히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8일 뒤에 이동할 다음 도시인 '바리' 행 기차표 예약과 '3일짜리 로마패스' 구매였습니다.

Tip: 기차표는 미리 끊어두어야 가격이 저렴하고 당일에 급하게 예약하다 보면

배차 시간을 놓칠 수도 있기에 다음 도시에 갈 계획이라면 반드시 도착한 첫날에 미리 뽑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Tip: 로마패스의 경우, 필수는 아니지만 주요 관광지를 저렴하게 볼 수 있고 해당 기간 동안 대중교통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어 좋은 아이템입니다. 2~3일 정도면 웬만한 장소는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

'3일짜리'로 추천드립니다.



티켓 자판기 앞에 서서 발권을 위해 한침이나 끙끙거리고 있는데

세미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성이 접근했습니다.

처음엔 "그래, 자네는 무엇이 문제인고?" 하는 여유로운 기세로 오길래 직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화려한 언변으로 잡담도 그럭저럭 나누면서 찾던 것보다 무려 80%나 저렴한 티켓을 끊어주었습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진행되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뉴욕에서 이런 서비스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제대로 경험했기에

그가 어느 정도 돈을 요구하더라도 지불할 의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정말 저렴하게 뽑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앞에는 좀 전까지 "Oh~ Korea! 김치 좋아요! 캄사합니다!" 하며 바람을 잡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10 Euro" 하며 차갑게 저를 응시하는 남자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거의 티켓값에 호가하는 금액을 요구해 짐짓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주머니에 있던 짤짤이를 다 털어 보여주며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가져가라' 하자,

그는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다시 한번 "10 Euro"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저도 물러서지 않고 버티자, 지폐가 큰 단위밖에 없는 줄 알고 근처 카페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심지어 ATM기 앞까지 데려간 후 그럼 인출해서 달라고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공간에서도 당당히 사기를 치고 있는 모습에 다시금 악명 높은 치안을 실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ATM기기가 먹통을 부려주었고, 그는 다시 저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려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두 번의 경우, 제가 순순히 그의 뒤를 따라간 것을 보고

꽤 순진한 녀석을 잡았다고 방심한 모양인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앞서 가는 타이밍을 포착했습니다.



당시 전역한 지 갓 2개월밖에 안되었을 정도로 체력이 좋을 때라

뒤도 안 돌아보고 역을 뛰쳐나가 10분 정도 떨어진 공원을 4분 만에 달려서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멀리 서라도 알아볼세라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가방에 넣는 위장술까지.

처음 사기당한 것 치고는 너무 완벽하게 대처했습니다.

승리의 기념으로 그가 뽑아준 티켓을 한 손에 들고 테르미니 역 방향을 보고 어제 마시다 남은 콜라나 한 잔 했습니다.


로마패스까지 구입한 후 처음으로 지하철을 개시했습니다.

(로마패스의 유효시간은 첫 지하철 혹은 첫 티켓 개시를 기준으로 흘러갑니다.)

뉴욕에서도 느꼈지만 의외로 선진국의 대도시들은 지하철이 빈티지한 편이었습니다.

트랩 도어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타오르는 듯한 열기는 덤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서울의 쾌적한 지하철이 떠오르곤 합니다.



지하철을 열자마자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콜로세움(Colosseo)'입니다.

단연 로마를 느끼기에 가장 대표적인 곳이고,

로마패스의 첫 개시를 멋지게 끊고 싶은 마음에 정한 곳입니다.

콜로세움은 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는데

수천 년의 역사가 무색할 만큼 상상했던 것보다 더 웅장한 모습에 제대로 압도되었습니다.

입구를 찾는 곳도 어려워 한참이나 돌다가 가까스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패스의 가장 좋은 이점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일반 관광객과, 패스 관광객이 들어가는 입구가 나뉘어져 있어

패스를 소지한 사람은 하이패스로 앞서 입장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이런 정보를 미리 알아두어 현명하게 써먹은 제 자신을 칭찬했습니다.

(역시 사두길 잘했어...)



내부에서 촬영한 콜로세움의 모습입니다.

현재는 가운데 경기장의 바닥이 반만 채워져 있고 나머지 공간은 내부 기둥이 훤히 보일 정도로 걷어놓았지만,

전성기 시절 수많은 용사와 맹수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했으리라 생각하니 새로운 감회에 젖어들었습니다.

(???: 막시무스!!)

심지어 당시에는 동물, 사람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려주는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80개 정도 되는 아치 문으로 5만 5,000명 정도 되는 관객이 15분 내에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황제와 귀족뿐만 아니라, 여성, 노예, 자유민까지 모두가 보고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문화 공간이었다는 점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2천 년 전의 기술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된 과학의 집결체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공간이어서 이따금씩 벽면을 만지며

'나는 지금 2천년 전에 만들어진 돌조각을 만지고 있는 거다' 해야만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티투스의 개선문'과 '포로 로마노'가 있었는데,

그 코스는 거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점심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죠.

제 아무리 멋진 유적이라고 해도 밥때를 거르면서까지 볼 수는 없는 일 입니다.

그것은 로마도 예외는 아닙니다.


외부에서 다시금 콜로세움의 웅장함을 담았고

선물용으로 구매한 미니어처도 함께 끼워주었습니다.

Tip: 기념품은 절대 그 현장에서 구매하려고 욕심내지 마세요.

거리를 걷다 보면 같은 물건이지만 훨씬 저렴한 가격에 훨씬 좋은 품질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저걸 콜로세움 안에서 6유로에 샀는데 길거리에서 같은 모양, 더 튼튼한 걸로 1.5유로에 팔고 있었답니다 :( )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콜로세움이 보이는 한 '피체리아'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곳에서 피자가게는 주로 '피체리아(Pizzeria)'라고 부릅니다.)


웨이터가 호객을 하는 데 점심메뉴 세트를 꽤 괜찮은 가격에 부르길래 길게 망설이지 않고 앉았습니다.

따로 가려던 맛집이 있었지만 이렇게 즉흥으로 알아낸 곳이 더 맛집인 경우가 많기에 확신하고 들어갔습니다.


입가심 용으로 레몬콕이 먼저 나왔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양이 더 적어서 아껴 마셨습니다.


다행히 더 마시기 전에 안티파스토인 '부르스케타'가 나왔습니다.

안티파스토는 '애피타이저'를 뜻하는 이탈리아 용어로,

이탈리아어의 음식에 관한 어원을 따지자면 굉장히 복잡하지만.. 여하튼 눈앞의 음식은 맛을 봐야겠지요.

간이 잘 배어 있는 바게트가 구운 토마토와 잘 어우러져 담백하고도 달달한 식감을 주었습니다.

식당에서 제대로 먹은 첫 이탈리아 음식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맛입니다.

그런데 메인 요리인 '마르게리따 피자'는 안티파스토의 맛이 입에서 사라질 때쯤이 되어서야 나왔습니다.

너무 늦은 탓에 기다리는 동안 레몬콕도 거의 다 마셨습니다.

그래서 피자 한판을 음료 없이 먹기에는 불가능하다 여겨 물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물 한 병이 나오는 데도 거의 20분이 소요됩니다.


여기 직원들은 죄다 함흥차사인가 싶을 정도로 답답한 속도에 벌써 한국이 그리워지던 찰나,

물과 함께 갱신된 영수증을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계산서 중 세 번째 항목인 'ACQUA'는 '물(생수)'을 의미하는 데,

무려 4유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한화 약 5,300원 정도)



식당에서 물을 돈 주고 사서 마시다니요? (게다가 저 금액은 지금 봐도 말이 되지 않는군요.)

아직 현지화가 덜 된 상황인 것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탈리아를 이루고 있는 지반은 대부분 석회질이어서,

식수를 얻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당에서도 물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물 값보다 와인, 맥주가 더 저렴해 물 대신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고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깨닫게 되는 첫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디저트로 나온 푸딩을 먹으면서

'앞으로 쉽지만은 않겠어...' 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퓰렌스] 세계에 나를 던지다 '이탈리아' - 로마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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