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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오퓰렌스] 세계에 나를 던지다 '이탈리아' - 로마 6편

by 오퓰렌스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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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6편]

 

 

 

해가 저물어 감과 동시에 언덕을 내려올 때는 날씨가 선선하고 걷기 좋아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근처에 있던 '산탄젤로 다리'를 건넜습니다.

 

일부러 찾아 올 계획은 아니었지만 기왕 도착한 김에 '산탄젤로 성'까지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보통 동행이 있다 보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오히려 스트레스인 경우도 있는데

 

J형과 저는 코드가 잘 맞아 별다른 마찰 없이 척척 경로를 정해 나아갔습니다.

 

 

 

'산탄젤로 다리'에서 바라본 'Castello Sant' Angelo (산탄젤로 성)'입니다.

 

산탄젤로 성은 성곽 외부에 '오각형' 모양의 요새가 본 성을 지키고 있는데,

 

이곳은 과거 신성로마제국이 공격해올 때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스위스 근위대의 도움을 받아

 

피신했던 장소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그 덕에 현재는 교황이 거처하던 동안 쓰였던 교황의 방과 무기 전시실, 지하감옥 등등

 

고성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명소입니다.

 

 

 

 

저희는 내부에 입장하지 않고 근처 난간에 걸터앉아 길거리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감상했습니다.

 

걷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은 J형의 여행 마지막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잠시 여러 생각에 잠긴 듯했고

 

저는 그동안 악사의 연주를 들으며 충분히 그를 기다려주었고

 

저녁이 저물어가는 로마의 모습을 시시각각 눈에 담아냈습니다.

 

 

 

 

사실 혼자 다니다 보면 밤의 취약한 치안을 우려해

 

해가 지기 전에 바로바로 들어가곤 했는데

 

이제는 든든한 동행과 함께 걱정 없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내일이면 떠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움이 뚝뚝 떨어집니다.

 

 

 

다시 테르미니역 부근의 숙소 근처로 돌아왔습니다.

 

J형은 이대로 들어가서 마지막 밤을 시시하게 보낼 수는 없다고 하며

 

근처 마트에 들러 야식을 사 먹자고 했습니다. 저도 기꺼이 찬성하며 둘이 먹기에는 제법 많은 양을 사들였습니다.

 

지금까지 센트 단위의 동전까지도 꼼꼼히 체크하며 지출을 줄여나가던 저였지만

 

오늘만큼은 봉인을 해제해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래도 역시 이 정도 양은 둘이 먹기에 조금 무리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숙소 방 일행 두 명이 오늘의 야식 파티에 추가되었습니다.

 

재수해서 연세대 합격 후 입학 전에 머리를 식힐 겸 여행 온 'Y군'과

 

디자인과 출신이지만 현재는 서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계시는 'G형님'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로마에, 그리고 이곳에 모였다는 것은

 

오묘한 동지 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통칭 여행자들의 건배사인 "반갑습니다!"를 외치며 본격적인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여행 정보나 팁들을 공유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마셨습니다.

 

이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여기며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던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J형은 제가 일어날세라 조심조심 짐을 꾸리고는 나가려 했는데

 

여행지에서는 아침잠이 잘 없던 터라 일어난 김에 그를 역까지 같이 나가서 배웅해주었습니다.

 

로마에서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치열한 현실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내 여행의 마지막 순간에는 과연 어떤 마음, 어떤 표정으로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지 한 번 떠올려 보았습니다. 

 

 

 

얼떨결에 G형님도 일어나서 인사를 하다가 오늘 저녁이나 한 끼 하자고 쇼부를 보았습니다.

 

J형의 빈자리로 힘들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하지만 낯 동안의 관광은 다시 각자 개척해 가야 했지요.

 

처음부터 계속 외로웠으면 덜 했겠지만,

 

누군가가 같이 있다가 떨어지는 것은 더 큰 공백을 남겼습니다.

 

배는 고팠지만 입맛도 없어 정처 없이 걷다가

 

온 신경을 깨우는 듯한 향기에 이끌려 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테르미니 역전 근처의 '케밥집'으로, 

 

한국 음식이 점점 그리워지던 차에 맡게 된 아시아 음식의 향기는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향수와

 

푸짐한 맛으로 지친 영혼까지 달래주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빵이 터질 듯 낭낭하게 담아준 고기는 

 

점심을 따로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든든했습니다.

 

 

 

형제 국가의 깊은 정을 느끼고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근처 공원이 있어 잠시 벤치에 앉아 폰을 봤는데 그제야 아차 싶었습니다.

 

며칠 전에 올려둔 '유랑'카페의 글을 언젠가부터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알림 1건이 도착한 것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상대로부터 하루간 일정을 같이 하겠다고 확답이 왔으며,

 

지금 다른 도시에서 로마로 오고 있는 중이라 했습니다.

 

다시금 동행이 생겨 설렜지만 동시에 낯선 사람과 새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잠시 간 나눈 대화만으로도 굉장히 즉흥적이고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속 장소에 와 있다고 해서 바로 달려갔는데 그곳에 서 있는 분은

 

시원시원한 인상에 낮은 신발을 신었음에도 훤칠한 키를 가진 여성 분이셨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유랑 동행 'L누나'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여성분이 신청하셨을 줄은 예상도 못해서 처음에는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먼저

 

"먼저 말 놓아도 될까요? 저는 이런 게 편해서"

 

라고 했고 덕분에 어색함은 빠르게 허물어졌습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며 딜레마에 빠졌는데 그녀가 먼저 힌트를 주었습니다.

 

"와 로마에만 7일 있었다고? 그럼 여기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그거라면 답하기 쉬웠죠.

 

해당 장소로 가는 도중에 누나가 먼저 "오 저기 한 번 들르자" 해서 들어간 곳은

 

젤라토 가게였습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젤라테리아가 눈에 띄길래 사 먹고 싶어 들어간 듯한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이드 북에 나온 맛 집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번에 잠깐 한 번 들렀지만 너무 좋은 감정을 얻었고

 

언젠간 제대로 와야 할 곳이라 다시 찾은 'Piazza di Spagna (스페인 광장)' 입니다.

 

이름의 어원은 근처에 바티칸 주재의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은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명소의 보존을 위해 보안관들이 모든 취식을 금하고 있습니다.)

 

 

 

L누나는 이곳을 보고 "스페인 광장? 너무 평범한 거 아니야?" 하며 너스레를 늘어놓았는데

 

저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며 계단의 상층부로 안내했습니다.

 

 

 

황혼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이 보일 때까지

 

그녀에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 계단에 오르고 나서야 이제 내려다 보아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 광경을 보고 한 순간 말이 없더니

 

"와 여기... 정말 좋다... 내가 로마에 2번째 와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 봤어!"

 

하며 연신 감탄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행 오기 전 기념으로 그려온 이탈리아 국기 네일아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만 알고 있던 장소를 누군가에게 소개해주고 그곳을 상대가 좋아해 주니 더 벅차고 뿌듯한 감정이었습니다.

 

 

 

한참 이곳의 정취를 느끼며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시간이 되었고

 

G형님과 같이 먹을 예정인데 같이 가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저녁식사 장소는 G형님의 선택으로 들어온 가게였습니다.

 

현지인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보니 불현듯 후추 파스타가 생각나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현직 셰프인 그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예상외로 서로의 공통점을 많이 찾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강릉이 고향이었고 저는 대학을 강릉에서 나왔으며,

 

두 분은 디자인과 출신, 저는 그림을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서로 침묵할 새 없이 바쁘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코스요리의 회차가 거듭 될수록 말수가 적어졌습니다.

 

 

 

앞서 나온 안티파스토는 좋았으나, 뒤이어 나온 두 메인 요리는

 

좋았던 분위기를 점점 침묵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파스타와 라자냐는 초월적인 짠맛과 느끼함으로 이전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으며,

 

생선 요리는 벌써부터 비릿한 향에 손도 거의 대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만 이런가 싶었는데 L누나는 이미 콜라 한 잔을 비웠고

 

G형님은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음식값의 반을 낼 테니 둘이서 반의반씩 내는 걸로 하자."

 

했습니다. 가격조차도 총 합해서 한화 약 8만 원이라는 쉽지 않은 금액으로,

 

다시금 이탈리아 음식과 잘 맞지 않음을 의심하게 되는 식사였습니다.

 

 

 

그래서 나오자마자 "에이! 기분전환이나 해야겠다!" 하고 일부러 호기를 부리며

 

다시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낮보다는 한산한 인파 덕에 광장의 모습을 더 찬찬히 즐길 수 있었고

 

여럿이 함께하니 야경을 볼 수도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에 지나쳤던 거리들도 구석구석 야경으로 보고 있자니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세 명 모두 한 사람도 서두르고 모날 것 없이 의견이 잘 맞아

 

더 즐거웠던 야간 산보였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하루 간 이별과 만남이 있고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을 회상하며 조금 더 성숙해짐을 느꼈습니다.

 

현재의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는 그 시간이 영원할 것을 바라지만,

 

시간은 한 순간도 멈춰준 적 없이 다시 흘러가며 때로는 괴로움으로 전환되기도 하고

 

설레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쓰라린 이별도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하고 지금의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후회 없이 보내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 체류한 지 7일이 되어서야 이곳에서 찾고자 했던 진리를 조금이나마 깨우치게 된 밤이었습니다.

 

 

 

 

 

[오퓰렌스] 세계에 나를 던지다 '이탈리아' - 로마 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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